[교회사 이야기] 제19화 교회 개척 운동과 선교의 확장

21세기에 접어든 캄보디아 개신교회는 교회 개척 운동의 열풍에 들어갔다. 물론 이를 주도한 이들의 대부분은 외국에서 온 개신교 선교사들이었다. 미국 최대 규모의 남침례교 (Southern Baptist) 선교부 (IMB: International Mission Board)는 이러한 흐름에 가장 먼저 기여하였는데, 데이빗 게리슨 (David Garrison)은 1999년, “교회개척운동 (CPM: Church Planting Movements)”이라는 소책자에 캄보디아 교회...

[교회사 이야기] 제18화 21세기 캄보디아 교회와 MK 2021 운동

캄보디아는 1999년 4월, 아세안 (AS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 가입하였는데, 이는 캄보디아 국가 발전에 매우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즉 아세안 가입 이전의 캄보디아와 아세안 가입 이후의 캄보디아는 여러 가지 면에서 구분되는데, 1993년 첫 번째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함으로 연립정부를 수립할 수밖에 없었던 훈센 정부는 1998년 두 번째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이후, 다음 해...

[교회사 이야기] 제17화 EFC 설립과 새천년 전도 집회

1989년, 베트남 군대가 10년 만에 캄보디아에서 철수하면서 캄보디아에는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는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곧이어 UN이 중재하는 평화협정으로 이어졌다. 당시 캄보디아에서 정치적 영향을 미쳤던 각 정파 대표들은 여러 번의 시도 끝에 1991년 10월 23일, 프랑스 파리에서 12인의 국가최고평의회(SNC: Supreme National Council)를 구성(의장: 시아누크, 부의장: 훈센)하고, 1993년의 첫 총선을 위해 1991년 11월부터 활동할...

[교회사 이야기] 제16화 1990년대 초, 캄보디아 교회 재건을 위한 노력

1990년대의 캄보디아 교회는 크게 캄보디아 안에서, 소위 지하 교회 또는 가정 교회 형태로 모임을 유지하던 그룹과 난민캠프 또는 외국에서 귀환한, 소위 외부에서 들어온 두세 그룹이 만나면서 캄보디아 교회를 재건하던 때로, 당시 대표적인 교계 지도자들은 다음과 같다. – 캄보디아 지하 교회 지도자들: 용솟, 헹쳉, 살폴레악, 웅리언, 몰리요스, 시응앙, 임촌 등 – 난민캠프에서 송환된 지도자들: 맘바나바, 우온셀라, 브롬삼보, 메스타비, 민솔, 레이사노...

[교회사 이야기] 제15화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의 캄보디아 교회

1979년부터 약 10년 동안 캄보디아 교회는 ‘외부 원조’와 ‘자립 교회’ 사이에서 많은 갈등이 있었는데, 교회에서조차 가난한 이웃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열악한 상황은 그렇다 해도 교인들 스스로 교회를 가난의 해결 대상으로 생각하는 인식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배고파 찾아오는 ‘Rice Christian’의 문제는 빈곤 속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려웠던 1980년대 동안 뿌리내린 강점과 약점이 1990년대 계속해서 그 결과가 열매로 나타났다. 캄보디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