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이야기] 제20화 캄보디아 선교역사를 찾아서-개신교 90주년 선교포럼

필자는 1993년 11월 초, 베트남에서 타문화권 선교 사역을 시작하였으며, 2006년 6월에는 캄보디아로 필드를 변경하여 선교 사역을 계속하고 있다. 베트남에서의 선교 사역은, 비록 사회주의 체제였지만 ‘베트남복음성회 (Evangelical Church of Vietnam)’라는 개신교 대표 교단이 있었고, 선교와 교회 역사는 물론, 외국인 선교사의 역할과 베트남인 목회자의 역할이 상당히 선명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외국인 선교사는 베트남인 교회의 공 예배에서 설교를 포함한 그 어떤 순서도 담당할 수 없었으며, 공식적인 종교 활동에 간여할 수 없었다.

2006년 6월, 필자가 캄보디아에 입국하여 선교 사역을 시작하면서, 캄보디아에 있는 개신교회 현황과 선교역사 등에 대해 주위의 지인 선교사 및 소속 단체 등에 문의했지만 만족할만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 필자는 얼마 지난 후에, 캄보디아에는 전체 개신교 교세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소위, 대표 교단이나 선교단체가 없었고, 교회 현황이나 선교역사 역시 체계적으로 정리된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사하게 2008년, 초교파 복음주의를 배경으로 하는 MK (Mission Kampuchea) 2021운동이 시작되었다. 이후로 캄보디아 개신교회 통계는 5년에 한 번씩 업데이트되었으며, 그 통계를 배경으로 캄보디아 각 지역에 교회 개척 및 기도 연합 운동이 이어졌다. 이 운동의 한 분야는 연구 분야였는데, 안타깝게도 캄보디아 선교 교회 역사는 그 주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필자는 2011년 11월, 주캄보디아한인선교사회 (KMAC: Korean Missionary Association in Cambodia) 정기총회에서 총무로 선임되었는데, 총무로 섬기면서 캄보디아 선교역사연구분과를 구성하고, 약 1년 반 동안, 캄보디아 선교역사에 연관된 자료와 정보 수집, 영문 내용 번역에 이어 8명의 위원(김조동, 김창숙, 서길성, 이교욱, 이시은, 이윤수, 조학현, 황종철)과 함께 “캄보디아 선교역사”를 집필, 2013년 5월에 발행하였다. 내용은 크게 1편: 캄보디아 개신교 90년사와 2편: 캄보디아 한인 선교 20년사로, 이는 한국어로 된 첫 캄보디아 선교 역사서로 자리매김을 하였다(공동 발행: 주캄보디아한인선교사회/한국세계선교협의회).

이와 함께, 첫 개신교 선교사의 캄보디아 입국 90년을 기념하여 2013년 5월 28~31일, 프놈펜 기독교연합봉사관(송준섭 선교사)에서 “캄보디아 개신교 90주년 선교포럼”을 개최하였는데, 이때 캄보디아에 주재하는 약 150여 명의 한인 선교사와 서구권 선교사 그리고 캄보디아인 교계 지도자들이 모였으며, 10개의 소주제를 크마에/영어/한국어로 나누어 동시통역으로 진행하였다. 자료집 역시 3개 언어로 편집하였으며, 마지막 날에는 ‘캄보디아 개신교 90주년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주 강사는 1958년, 한국인 선교사로는 처음 캄보디아를 방문하여 복음을 전한 최찬영 선교사(현재 미국 LA 주재) 외에 이장호 목사, 강승삼 KWMA 대표회장, 한정국 KWMA 사무총장과 Yourng Soth 목사(KEC), Mam Barnabas 목사, Heng Cheng 목사, David Manfred(C&MA) 선교사 등이었다. 소주제 트랙에서는 송진섭 선교사, 공베드로 선교사, 이성민 선교사, 서길성 선교사, 오석환 선교사, 백신종 선교사, 이교욱 선교사 등이 역시 서구권 선교사 및 캄보디아인 교계 지도자들과 함께 발제 논찬 토론 등의 순서를 담당하였다./장완익 선교사 (캄보디아교회사연구원장)

[교회사 이야기] 제19화 교회 개척 운동과 선교의 확장

21세기에 접어든 캄보디아 개신교회는 교회 개척 운동의 열풍에 들어갔다. 물론 이를 주도한 이들의 대부분은 외국에서 온 개신교 선교사들이었다.

미국 최대 규모의 남침례교 (Southern Baptist) 선교부 (IMB: International Mission Board)는 이러한 흐름에 가장 먼저 기여하였는데, 데이빗 게리슨 (David Garrison)은 1999년, “교회개척운동 (CPM: Church Planting Movements)”이라는 소책자에 캄보디아 교회 성장 사례를 소개하자 캄보디아 선교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었고, 그다음 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빌리그래함 선교대회에서는 캄보디아 교회 개척 사례를 발표하면서, 교회 개척이 가능한 선교 필드로 캄보디아가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 캄보디아 각 시도별 교회 현황(2017년 기준)

데이빗 게리슨은 1989년 12월, 캄보디아 전략 코디로 미국 남침례교 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캄보디아에 왔으며, 그는 1991년까지 언어 연수와 함께 캄보디아 복음화 전략을 구상하였다. 이후 그는, 그의 구상을 따라 캄보디아인 평신도를 훈련하여 이들을 교회 개척의 중심으로 서게 하는, 기존의 선교사들이 직접 교회 개척을 하는 방식을 탈피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구상은 실제적으로 캄보디아에 긍정적으로 적용되었으며, 이로 인해 1993년 기준, 6개였던 캄보디아 침례교회는 10개로 증가하였으며, 1년 뒤에는 20개 그리고 1995년에는 43개에 이르렀다. 이를 배경으로 캄보디아 침례교회는 지방회-총회 개념의 KBC(Khmer Baptist Convention)를 결성하였으며, 이는 나중에 CBC(Cambodia Baptist Convention)의 모체가 되었다. 그 이듬해 침례교회는 78개로, 1997년에는 당시 캄보디아117개의 군(District)이 있었는데, 그중 53개 군에 123개의 침례교회가 세워졌다. 1999년에는 200개 침례교회, 10,000명의 침례교인이 있었다. 물론 이 교회 중 건물을 가진 교회는 많지 않은 가정 교회 형태였다.


▲ 연도별 교회개척 수(2017년 기준)

남침례교 선교부 외에도 감리교회, 장로교회, 성결교회, AOG 등의 교단선교부 및 Four Square, Pioneers, World Team, Inter-Serve, CRM, Mission To the World 등의 미국 선교단체들 그리고 호주, 홍콩, 싱가포르, 한국 등에서 입국하는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과 캄보디아인 교인들의 전도 등으로 2001년에는 1,000개 이상의 교회가 캄보디아에 세워졌고, 교인 역시 60,000명을 넘게 되었다. 물론 기존의 C&MA는 KEC를 통해 OMF, World Vision과 각 기독교 NGO들 역시 이러한 교회 개척 운동에 참여하였다.

기독교 NGO와 교육단체들은 기술학교, 학사 등을 통해 캄보디아 선교에 참여하였다. 에릭 둘리(Eric Dooley)는 1993년, 지방에서 프놈펜으로 온 청소년을 대상으로 영어와 컴퓨터 학교를 시작하였으며, 척 맥콜(Chuck McCaul) 선교사는 올림픽 시장 근처에 사무기술훈련학교를 열어 매주 1,000명 이상의 청소년들에게 영어와 직업훈련을 시행하면서 전도함으로, 수백 명이 출석하는 교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유사한 방법의 학사들이 프놈펜에서 시작되었는데, 이렇게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사역의 열매로 후에 차세대 목회자들은 여러 분야에서 능력 있고 헌신된 교회 지도자들이 배출되었다./장완익 선교사 (캄보디아교회사연구원장)

[교회사 이야기] 제18화 21세기 캄보디아 교회와 MK 2021 운동

캄보디아는 1999년 4월, 아세안 (AS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 가입하였는데, 이는 캄보디아 국가 발전에 매우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즉 아세안 가입 이전의 캄보디아와 아세안 가입 이후의 캄보디아는 여러 가지 면에서 구분되는데, 1993년 첫 번째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함으로 연립정부를 수립할 수밖에 없었던 훈센 정부는 1998년 두 번째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이후, 다음 해 아세안 가입이라는 성과를 이루어 냄으로 명실공히 국제 외교적인 인정을 받고, 외국 기업의 투자 유치를 통해 국내 경제적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와 함께 2000년대 즉, 21세기에 접어든 캄보디아에는 안정된 국내 여건과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파송한 선교사들을 통해, 많은 교회가 설립되었고 여러 신학교가 개교되었다.

1979년 1월, 베트남의 침공으로 폴폿의 민주캄보디아 정권이 몰락할 당시 캄보디아에는 불과 3개의 교회만 남아 있었으며, 현재의 캄보디아왕국이 수립되던 1993년의 교회는 105개였다. 그러나 1999년~2000년에는 500여 개로 그리고 2003년에는 1,000여 개로 증가하였다. 이 교회의 반 이상은 독립교단 즉, 특정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교회였으며, 교회 운영 형태로 볼 때는 미조직 또는 가정 교회였다. 교단 배경으로 감리교회를 필두로, 침례교회, 오순절교회, 장로교회, 성결교회 등이 설립되었으며, 선교단체 배경으로 C&MA-KEC, Bible League, OMF, CCC교회 등이 설립되었다. 목회자 양성을 위해 Phnompenh Bible School, Phnompenh Bible Institute (AOG신학교), 감리교신학교, 장로교신학교, 성결교신학교 등이 열렸으며, 신학연장교육 (TEE: Theological Education by Extension)도 계속 운영되었다.

캄보디아장로교회는 2003년 7월 9일, 캄보디아에서 사역하는 23유닛의 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캄보디아장로교공의회 (CPCC: The Council of Presbyterian Church in Cambodia, 캄장공)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며, 2004년 10월 5일에는 캄보디아장로교신학교 (CPTI: Cambodia Presbyterian Theological School, 후에 Institute로 개명, 캄장신)를 개교하였다.

1996년 1월에 설립된 EFC를 통해 복음주의 배경으로 교제하던 캄보디아 교계 지도자들은 이러한 개신교의 약진에 힘입어 헹 쩽(Heng Cheng) 목사, 폴레악(Sar Paulerk) 목사 등을 중심으로 ‘2021년까지 캄보디아 14,000여 개의 모든 마을에 교회를 설립하자’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2008년에 “MK (Mission Kampuchea) 2021 운동”을 출범하였다. 이 운동은 필리핀의 교회 개척 운동을 모델로 하였으며, 주요 활동은 전국 무 교회 지역에 교회 설립하는 일이었다. 이 외에도 교육 사역(교회 설립 시 미션 유치원 또는 미션 초등학교를 함께 설립), 5년마다 교회 통계 발표, 각 시도별 순회의 기도 운동을 병행하였으며, 캄보디아 교계 지도자들과 함께 외국인 시니어 선교사들이 위원으로 참여함으로 자연스럽게 캄보디아 개신교를 대변하는 역할도 하게 되었다. 참고로 이 운동이 출범하던 2008년 당시, 캄보디아에는 1,760여 개의 교회가 있었으며, 14,000여 개의 마을 가운데 12,000여 개 이상의 마을은 무 교회 마을이었다./장완익 선교사 (캄보디아교회사연구원장)

[교회사 이야기] 제17화 EFC 설립과 새천년 전도 집회

1989년, 베트남 군대가 10년 만에 캄보디아에서 철수하면서 캄보디아에는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는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곧이어 UN이 중재하는 평화협정으로 이어졌다. 당시 캄보디아에서 정치적 영향을 미쳤던 각 정파 대표들은 여러 번의 시도 끝에 1991년 10월 23일, 프랑스 파리에서 12인의 국가최고평의회(SNC: Supreme National Council)를 구성(의장: 시아누크, 부의장: 훈센)하고, 1993년의 첫 총선을 위해 1991년 11월부터 활동할 캄보디아잠정행정기구(UNTAC: United Nations Transitional Authority in Cambodia) 구성을 결정하였다. 이로 인해 캄보디아는 만 20년 이상의 내전을 종식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UN군 주둔 이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등, 그 전에는 없었던 여러 사회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1993년 9월, 새로운 헌법 아래 첫 총선이 치러졌으며, 이로써 입헌군주국인 현재의 ‘캄보디아 왕국(Kingdom of Cambodia)’이 세워졌다.


▲ EFC 설립(1996년 1월)

캄보디아 개신교회는 이러한 정치적인 변동과 혼란 속에서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바뀌는 정권마다 불교를 변함없는 캄보디아의 국교(國敎)로 인정하였고, 현재의 정권 역시 불교는 캄보디아의 국교라고 헌법에 명시하였다. 새로운 정권을 맞이한 캄보디아 개신교회는, 비록 불교가 캄보디아의 전통적인 종교이자 캄보디아인 대다수가 신봉함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자유 및 정교 분리의 원칙을 내세워 캄보디아 개신교회에 대한 법적인 허가를 요청하였다. 이에 캄보디아 정부에서는 1995년 12월, 캄보디아 개신교회를 허가하였고, 이 허가에 의해 1996년 1월, 프놈펜에서 EFC(Evangelical Fellowship of Cambodia)가 설립되었다.

이는 캄보디아 개신교회(교단)와 선교단체 중의 75% 이상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해 총회를 가지면서 캄보디아 개신교회의 대정부 창구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하고 있다. 그 외에도 종교부를 통한 교회허가서 발급 업무를 담당하며, EFC에 소속된 교단이나 선교단체의 멤버 중, 외국인 선교사의 비자 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하고 있다.

1993년에 입국한 송진섭 선교사는 1999년 2월, 캄보디아감리교신학교(MTS: Methodist Theological Seminary) 졸업생 17명과 함께, 캄보디아감리교회(MCC: Methodist Church of Cambodia)를 조직하였는데, 이는 한국 감리교회를 비롯한 4개국 감리교회 연합 사역으로, 향후 한인 선교사들의 교단 연합 사역 모델이자 발판이 되었다.


▲ 새천년 전도 집회(1999년 12월)

EFC 설립 이후, 1900년대를 보내고 2000년대를 맞이하는 캄보디아 개신교회는 1999년 성탄을 앞둔 12월 1~2일, 프놈펜 공설운동장에서 대규모 전도 집회를 가졌으며, 이는 ‘새천년 전도 집회(New Millenium Celebration)’로 명명되었다. 이는 캄보디아 교회 역사 상, 가장 많은 수가 모인 집회이며, 수많은 이들이 새 생명의 주(主)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만 대형 전도 집회를 치르기 위해 필요한 재정 조달과 집행 과정 중, 각 교단과 선교단체 간 대표들 사이에 나름대로의 오해와 불신이 발생되었으며, 이는 향후의 협력과 연합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장완익 선교사 (캄보디아교회사연구원장)

[교회사 이야기] 제16화 1990년대 초, 캄보디아 교회 재건을 위한 노력

1990년대의 캄보디아 교회는 크게 캄보디아 안에서, 소위 지하 교회 또는 가정 교회 형태로 모임을 유지하던 그룹과 난민캠프 또는 외국에서 귀환한, 소위 외부에서 들어온 두세 그룹이 만나면서 캄보디아 교회를 재건하던 때로, 당시 대표적인 교계 지도자들은 다음과 같다.

– 캄보디아 지하 교회 지도자들: 용솟, 헹쳉, 살폴레악, 웅리언, 몰리요스, 시응앙, 임촌 등

– 난민캠프에서 송환된 지도자들: 맘바나바, 우온셀라, 브롬삼보, 메스타비, 민솔, 레이사노 등

– 외국에서 돌아온 지도자들: 아룬속넵, 콩촌, 시탄리, 라다마니캄, 웅띠, 땅벡후엉, 삼은인탈


▲ 싱가포르에서 열린 CCS 모임(1990년)

1990년, 캄보디아에서 사역하는 시니어 외국인 선교사들과 캄보디아인 교계 지도자들은 캄보디아 개신교의 연합을 위해 CCS (Cambodia Christian Services)라는 일종의 선교연합회를 만들었는데, 이에는 캄보디아 개신교회는 물론 선교단체와 구호단체까지 참여하였다. 물론 이 단체는 캄보디아 정부에서 인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설립 이후, 여러 가지 대내외적인 이유로 인해 지도자들 간에 갈등과 분열이 시작되면서 그 역할은 약해져 갔다.

1992년, 프놈펜성경학교 (Phnompenh Bible School, 후에 Phnompenh Bible Institute로 개명)가 학생 30명으로 시탄 리 (Sitan Lee)와 라다 마니캄(Radha Manickam) 그리고 다니엘 램 (Daniel Lam, 홍콩인 선교사, 초대 학장)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는 C&MA에서 1925년에 개교한 바탐봉성경학교 그리고 1948년에 이전한 따크마으성경학교의 전통을 잇는 목회자 양성 기관이라는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 물론 C&MA에서는 이러한 정규 성경학교 외에도 신학연장교육 (TEE: Theological Education by Extension)이라는 비정규 과정을 통해 많은 목회자를 양성하였으며, 이는 캄보디아의 문화와 현실에 상당히 부합하고 있다.

1993년 1월 1일은 캄보디아에 첫 한국인 선교사 가정이 입국한 날이다. 이때를 시작으로 캄보디아에는 많은 한국인 선교사가 입국하게 되는데, 이는 별도의 장(場)으로 다루도록 한다.

한 통계에 의하면, 1993년 말 기준으로 캄보디아에는 150여 교회와 10,000명이 넘는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이후에도 교회와 교인들의 숫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나는데, 동시에 외국의 개신교 교단과 선교단체들의 급속적인 증가와 함께, 캄보디아인 교회 지도자들 간의 불신과 불화가 커지면서 캄보디아 개신교계는 분열되기 시작하였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외국의 개신교단과 선교단체들의 무분별하고도 경쟁적인 활동도 그 원인 중의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1994년, 미국인 전도자 마이크 에반스 (Mike Evans)의 대형 전도집회는 캄보디아 현대교회사에 치부로 불릴 만하다. 캄보디아인 교계 지도자들과 선교사들의 경고와 조언을 무시한 채, 엄청난 재정과 홍보를 통해 이틀 동안 올림픽 스타디움에 70,000명 이상을 모았는데, 이들은 온갖 병을 치유 받을 수 있다는 약속을 따라 캄보디아 전국에서 몰려든 것이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실망한 군중들에 의해 집회는 난장판이 되었다. 결국, 마이크 에반스는 경찰의 호송을 받아 비상 출국을 하였다. 이는 기독교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교회의 핍박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장완익 선교사 (캄보디아교회사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