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부터 시작된 캄보디아 개신교 선교는 1970년대까지 약 50년 동안 미국 C&MA (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 파송 선교사들이 전적으로 주도하였으며, 그 50년을 양분할 경우, 1953년을 분기점으로 볼 수 있다.
즉 1923년, 하몬드 선교사 및 엘리슨 선교사로부터 시작된 C&MA 캄보디아 선교는 신구약 성경 번역, 여러 지역의 교회 개척과 함께 바탐봉성경학교 설립으로 인해 교회 지도자의 훈련과 배출로 이어졌으며, 1947년 12월 10일, 바탐봉성경학교의 첫 졸업생 4명은 6년 뒤, 캄보디아 민족 교회(교단)로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1925년 9월에 개교한 바탐봉성경학교가 만 22년 만에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유는 그때까지 구약 성경 번역과 출판이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구약 성경은 1940년에 번역을 마쳤었고, 신구약 성경 전권 출판을 앞둔 상태에서 캄보디아 정부에서 발행한 사전의 발음과 성경의 발음에 차이가 있었기에 수정 보완을 하였으며, 이어 세계 제2차 대전의 발발로 인해 성경 출판이 연기되는 일까지 있었다.
▲ 바탐봉성경학교 첫 졸업생(1947년)
바탐봉성경학교의 첫 졸업생은 차우 보이(Chau Voich), 트리 혹(Tri Hoc), 네악 홈(Neak Hom)과 속 츄옴(Sok Chhuam) 등 네 명으로, 이들 중 세 명은 이미 안수를 받고 사역 중이었다. 바탐봉성경학교는 매해 또는 격년으로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며, 1953년 말까지 총 19명의 캄보디아인 목회자를 양성하게 되었다.
1953년은 캄보디아 역사에 매우 중요한 해인데, 캄보디아가 프랑스로부터 90년의 식민 지배를 마치고 독립을 쟁취하던 해이다. 아울러 이 해는 캄보디아 교회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데, 바탐봉성경학교에서 C&MA 선교사로부터 신앙적인 지도와 목회 훈련을 받은 캄보디아인 목회자들이 ‘캄보디아인으로 구성된 목사 그룹’을 형성한 해이다. 이는 지금의 Khmer Evangelical Church (약칭 KEC, 크메르복음교회)이며, 캄보디아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교단이다. 모임 장소는 따크마성경학교로 이는 1948년, 바탐봉에서 이전하였으며, 캄보디아 전국의 교회 대표(총대)들이 참석함으로 ‘총회’ 구성이라는 성격을 띠었다. 첫 총회장으로는 바탐봉성경학교 첫 졸업생인 네악 홈(Neak Hom) 목사가 세워졌다. 이러한 크메르 민족 교단의 설립은 교회 부흥으로 이어졌는데, 킬링필드 리빙필드의 저자 던 코맥은 이 시기를 ‘늦은 비’의 시기라 부른다.
▲ KEC 첫 총회장 네악 홈 목사
이러한 기독교의 확산은 불교 배경의 크메르 민족과 사회에 반감을 일으키는 요인도 되었으며, 당시 바탐봉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크메르 우익 단체의 위협으로 그리고 자립 정책의 시행으로 인해 여러 교회 지도자들이 사역을 중단하였고, 그 결과 여러 교회의 문이 닫히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MA 본부에서는 이 정책을 꾸준히 시행하였으며, 성경학교에서는 기본 커리큘럼을 단기 코스로 변경함으로 기도처나 교회의 평신도 지도자들이 성경을 쉽게 배움으로 평신도 지도자들이 사역할 수 있도록 도왔다./장완익 선교사 (캄보디아교회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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