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를 비롯한 인도차이나 지역에는 기독교가 언제 처음으로 전파되었을까? 학자나 교파마다 다른 의견이나 주장이 있을 수 있지만, 선교사 부모를 따라 젊은 시절, 캄보디아에서 선교 사역을 했던 폴 엘리슨 (Paul Ellison)의 주장에 따르면, 서기 450년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 있었던 네스토리안교회 총회에 인도차이나 지역의 교회 대표들이 참석했다는 것이다. 이 총회에 교회 대표를 보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70,000명의 신자가 있어야만 가능한데, 그는 이러한 주장의 배경으로 몬-크메르족 소수종족들 안에 남아 있는 창조와 타락 이야기들, 홍수 설화들,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사용하는 십자가 문양 그리고 베트남 중부 지역 짬족의 고대 용어에서 사용하는 성부 성자 성령의 단어들을 들고 있다.

인도 출신의 교회사학자인 존 잉글랜드(John England) 역시, 11세기의 많은 기독교 유물과 필사본들이 시리아, 인도, 인도차이나 등에서 발견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의 두 가지 의견은 아직 역사적 검증 또는 확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인 고증도 부족하거니와 반론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지도

역사적 고증에 따른 캄보디아 최초의 기독교 선교는 1555년, 포로투갈 도미니칸 소속의 가스뻐 끄루즈 (Gasper da Cruz) 가톨릭 선교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당시 캄보디아의 수도인 롱백 (Longback, 지금의 우동 근처)에 1년 살며 포교 활동을 벌였으나 개종자가 없자 캄보디아를 떠났다.

1574년 캄보디아에 입국한 실베스터 에제베도 (Sylvestre d’ Azevedo) 가톨릭 선교사는 15년 주재하며, 교회당을 건축하고 기독교 서적을 번역하는 등, 여러 선교 사역을 펼쳤다. 아울러 1585년에는 그의 요청으로 3~4명의 가톨릭 선교사가 추가로 입국하였으며, 캄보디아 왕으로부터 포교의 자유를 허락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메르인에게는 기독교 신앙의 뿌리가 깊이 내려지지 않았고, 캄보디아인 대상의 포교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1750년 이후, 캄보디아인에게 가톨릭 포교 활동이 시작되어 소수의 개종자가 나오기 시작하였으며, 이로부터 약 100년 후인 1863년, 캄보디아는 프랑스 가톨릭의 지대한 역할로 말미암아 프랑스와 인도차이나 보호령 조약을 맺게 된다.

즉 캄보디아에서 활동한 프랑스 가톨릭은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보호령 정책에 긴밀히 협조하였으며, 이로 인해 캄보디아인들은 가톨릭을 외국인의 종교로 생각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가톨릭은 500여 년 가까운 포교 역사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인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장완익 선교사 (캄보디아교회사연구원장)